30년 동안 구로 공단에서 재봉 일을 해온 영희 엄마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중국에서 옷이 대량 수입되면서 원단을 봉제해 옷을 만들 일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파로 영희 엄마가 다니던 공장을 비롯해 봉제공장 여러 군데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영희 엄마는 당분간 쉬기로 했다. 특히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만드는 일이 워낙 섬세한 작업이라 지난 30년 동안 영희 엄마의 시력은 매우 나빠져 있었다. 재봉일처럼 눈을 많이 쓰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병원에서 몇 번이나 알려줬지만 생계 수단이 그것밖에 없었던 영희 엄마는 줄곧 그 일을 해왔던 것이다.


“엄마, 이제 좀 쉬어요. 아빠랑 여행도 다니시고. 재봉 일을 너무 오랫동안 하셨어.”

“그래. 그런데 너희 아빠는 만날 술만 드시니 어딜 다닐 수가 있어야지.”

“방법 있나 뭐. 엄마 혼자서라도 다녀야지.”

“그러게 말이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때 영희가 엄마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출가한 영희네 집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 명희와 함께 돈을 모아 산 휴대폰이었다.


“엄마, 돌아다닐 때 급한 일 있으면 이 휴대폰으로 연락해. 전화 걸고 받을 줄 알지?”

“아이구 얘는, 무슨 급한 일이 있겠다고 비싼 휴대폰을 다......”


휴대폰을 받아 든 엄마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집에서 늘 술만 드시는 영희 아버지 때문에 딸들에게 전화 한번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영희 엄마로써는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진작부터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많이 망설였던 영희 엄마였다.


그 날 저녁 영희와 동생 명희는 엄마에게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3시간 동안 설명을 했지만 엄마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눈이 워낙 침침한데다 휴대폰은 처음이라서 첨단기능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또한 살아오면서 흰색의 긴 편지봉투만 봐온 엄마는 휴대폰 속 메뉴의 편지모양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그거 말고 왼쪽 네모 속에 브이자 처럼 돼 있는 게 메시지 보내기야.”

“어디? 아, 이거구나!”

“아이구 엄마는 참. 그건 전화번호 찾기 기능이라니까. 도대체 몇 번을 알려줘야 해?”

“...”


엄마는 침침한 눈을 끔뻑거리며 애써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지만 모든 게 너무나 낯설었다. 이럴수록 명희는 엄마한테 짜증이 났고 핀잔하는 듯한 말투로 엄마를 다그쳤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언니 영희가 입을 열었다.


“명희야,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한두 살 먹은 얘도 아니면서.....너 언니한테 한번 혼나볼래?”


명희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엄마도 무안했는지 멋쩍어했다.


“엄마 일찍 주무세요. 피곤해서 내일 어떻게 대구 가시려고? 그리고 그 문자 메시지 모르면 어때? 그냥 전화 걸고 받을 수만 있으면 돼지. 얼른 주무세요.”


그 날 밤 두 딸과 함께 잠을 자던 엄마는 비어 있는 건넌방으로 갔다. 건넌방에는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새벽이 돼서야 영희 엄마는 딸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영희 엄마는 오전 10시 대구행 버스를 타기 위해 차를 성남 모란터미널로 향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두 딸이 배웅을 갔다. 동생 명희는 어젯밤 엄마한테 퍼부은 핀잔이 미안했는지 배웅 가는 내내 엄마한테 아무 말도 걸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명희는 생각했다.


“엄마,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부었어요? 밤에 잘 못 주무셨나?”

“웅, 잠이 잘 안 오더라구. 그래서...”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 잘 다녀와요. 급한 일 있으면 이 휴대폰으로 꼭 연락하고... 그리고 어제 명희가 얘기한 문자메시지는 신경 쓰지 말아요. 중요한 거 아니니깐.”

“알았어. 걱정 말라니까.”


걱정 말라는 엄마의 얼굴은 무척 초췌해보였지만 환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마는 혼자서 싱글벙글했다. 영희와 명희는 그 까닭을 알 리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두 딸은 이불빨래를 하기 위해 양쪽 방에 있는 이불을 꺼냈다. 건넌방에서 이불을 꺼내던 동생 명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언니를 불렀다.


“언니 언니, 여기 와봐. 이불에 피가...”

“뭐라구? 이불에 왜 피가 묻어 있어?”


사실이었다. 이불 한 가운데에 야구공만한 크기의 면적에 피가 배어 있었다. 영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피가 묻은 거지? 어젯밤에 여기서 잔 사람도 없고... 명희야 혹시 너가 여기서 잤니?”

“아니.”

“그렇다면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 어제 우리하고 같이 주무셨잖아.”


두 자매는 의아해하면서 이불 빨래를 계속했다. 오후 두시가 다 돼 영희 휴대폰의 문자 도착알람이 울렸다.


“띠요옹.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영희는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는 친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영희아 몀희야 엉마 대구 질 왓타 치금 대구 떠미널이다. 명흐한떼 너무 뮈라고 하디 마라.”


“아니, 어떻게 엄마가 문자메시지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희와 명희는 어리둥절했다. 어젯밤에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다 결국 포기했는데 어떻게 해서 엄마가 문자를 보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그랬다. 밤새 휴대폰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어렴풋이나마 익혔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밤샘 하느라 피곤해서 코피가 쏟아졌고 결국 이불에 묻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엄마는 대구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한시간 걸쳐 딸들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두 번이나 다 쓴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침침한 눈으로 코피까지 쏟으며 밤새 휴대폰과 씨름을 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영희와 명희는 눈물이 솟았다.


그 날 저녁 동생 명희도 영희 휴대폰으로 온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것도 못하냐며 엄마한테 못되게 굴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영희와 명희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찍힌 휴대폰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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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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